7월 3일 서울역 앞에서 KTX 승무원들이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가기에 앞서 직접 고용을 촉구하며 집회를 하고 있다.

<김문석 기자>

380명이 파업 시작, 승무원직 포기·회유성 복직으로 82명 남아

‘KTX 여승무원이 되고 나서/ 나는 껌을 씹지 않는다/ 컵라면도 통조림도 먹지 않는다/…/ 내가 불쌍해서/ 한번 쓰고 버려지는 것들이/ 가여워서/ 눈물이 났다.’ (김명환 시인의 ‘계약직-KTX 여승무원이 되고 나서’ 일부)



‘비정규직의 꽃’이라는 애칭까지 얻은 KTX·새마을호 승무원들이 여전히 일터가 아닌 광장에서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다. 지난해 3월 1일, 철도공사의 승무 업무 외주화 방침에 항의하며 총파업을 시작한 지 8월 28일로 545일째.

지난 7월에 있었던 단식과 천막농성을 주도하며 22일간의 단식을 끝끝내 지켜낸 민세원 KTX 지부장은 많이 마른 몸이었지만 눈빛만은 살아 있었다. “위염과 피부질환 등으로 입원자가 속출하는 등 더 버티기엔 무리여서 단식 농성을 접었다”는 그는 “회사 측의 무대응 등 희생에 비해 얻은 것이 없지 않나 하는 내부 비판도 있어 조직적으로 힘겨운 상태”라고 전했다.

현재 파업 대열에 참여하고 있는 KTX·새마을호 승무원은 82명. 조합원 98%의 절대적 찬성으로 380여 명이 총파업을 편 이후 회사의 회유에 의한 복직, 승무원직 포기 등으로 동력은 상당수 이탈한 상태다.

민 지부장은 “파업 초기만 해도 공사만의 문제, 비정규직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의 노동환경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 내팽겨쳐질 줄이야 전혀 꿈도 꾸지 못했다”며 “철도공사의 ‘직접 고용은 절대 안 된다’는 확고부동한 원칙 앞에서 KTX·새마을호 승무원들은 투쟁에 남아 있든 그 현장을 떠났든 모두 희생자”라고 밝혔다.

단식·농성 등 총파업 545일

대학에서 체육학을 전공한 오미선씨(29)는 졸업 후 건강센터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다 2004년에 KTX 승무원 1기로 입사했다. 그 역시 이후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는 공사 측의 말만 믿고 희망을 가졌다고 한다.

500여 일 동안 싸우면서 그에게 가장 힘겨웠던 것은 12일간의 단식도, 비 내리는 거리에서의 한뎃잠도 아니었다. 그는 친한 동료들, 끝까지 싸워 이기자던 동지들이 하나둘 파업현장을 떠나는 것을 보는 것이 가장 힘겹고 가슴 아팠다”고 털어놓았다. 오씨는 “누구의 행동이 옳다 그르다의 의미가 아닌, 동료로서의 배신감 때문에 처음엔 그들이 너무나 미웠다”며 “하지만 그들 중에는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도 있고, 결혼한 사람도 있어 직장이 절박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용서와 이해가 됐다”고 말했다. 또 “파업이 길어지면서 담담해지고 적응이 될 줄 알았는데 요즘도 여전히 매 순간순간이 힘들다”며 “하지만 그 순간을 이겨내는 내 자신이 대견하고 고맙다’고 전했다.

과년한 딸이 한뎃잠을 자며 새까맣게 타면서 싸우고 있으니 어떤 부모인들 좋아하실까? “단식 끝내고 집에 돌아가니 어머니가 오히려 더 말라 있으시더라”는 그는 “요즘에도 ‘그만하고 다른 직장 알아보라’고 하시는 부모님께 ‘잘 될 것 같다’ ‘곧 끝날 것 같다’며 안심시켜드리고는 있지만 사실 나조차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이다”며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노동운동은커녕 학생시절 데모 한 번 나가보지 않은 사람. “1년 반 동안 싸우면서 스스로 지금껏 우리 사회 현실에 너무 무심하게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오씨는 “노동자의 힘이 강력하다면 사용자들이 저렇게 고집 부릴 수 있었을까?” 하고 되물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는 김모씨(28)는 현재 KTX 관광레저에 재입사해 승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그는 호텔리어를 꿈꾸던 여대생. 하지만 호텔업계의 채용문은 좁았고, 게다가 몇 년간 계약직으로 일해야 한다는 것도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그때 마침 KTX 승무원 채용공고를 접했다.

“근무한 지 1년 정도 지나자 어느새 정규직 운운하는 소리가 사라져 고용불안에 시달렸다”는 그는 “어느 날부터 월급이 줄고, 근무시간은 길어졌으며 결원이 생겨도 충원을 하지 않는 등 근무환경이 극도로 악화됐다”고 말했다. 철도공사 소속이 아닌 철도유통, 관광레저 등 철도공사 자회사 소속이었던 승무원들의 근무환경은 김씨가 꿈꾸던 ‘철도공사급’이 아니었다.

떠난 자도 “미안하고 답답할 뿐”

“노조가 설립되고 파업을 하면서 고용문제를 심각하게 느꼈지만 홀로 두 남매를 키워온 어머니를 생각하면 하루라도 빨리 직장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는 김씨. 결국 파업 7개월 만인 지난 가을, 그는 KTX 관광레저에 재입사했다. 물론 하청업체 직원으로 언제든지 실직할 수 있는 신분이었다. “서울역 광장을 지날 때마다 투쟁하고 있는 동료들과 마주칠까봐 두려웠다”는 그는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 내 자신에 대한 미안함 탓에 가슴이 늘 답답하다”고 전했다.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은 “KTX 승무원의 경우처럼 비정규직 외주화 문제를 방치할 경우 사회양극화 등 사회 전반의 병폐와 동반추락을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세계적으로도 보기 힘든 급속한 비정규직화가 대한민국에서 이뤄지고 있다”며 “IMF 이후 기업 경쟁력이 모든 가치에 우선하면서 기업에서는 인건비를 줄여 기업 이윤을 창출하는 경영을 펴고 있지만 이는 전근대적 사고”라고 지적했다. 또 기업이나 일부 학자들은 비정규직화가 세계적 추세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2000년대 들어 비정규직 수를 줄이고 차별을 없애려고 한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어학연수 겸 직장을 찾아 동생이 공부하는 미국으로 떠난다는 전 KTX 승무원은 말했다. “투쟁현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비를 맞으며, 밤을 지새며 그들과 부르던 ‘동지가’가 머릿속에서 좀처럼 떠나지 않는다. 미안하고 답답할 뿐이다”. 떠난 자와 남은 자,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자들까지 비정규직화에서 그 누구도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한편 ‘14개 정부투자기관 2006년도 경영실적 평가’에서 12등, 매년 5000억 원이 넘는 적자를 내는 한국철도공사는 지난달 정규직 직원에게 경영실적 성과급 300%를 지급했다. 총 지급액만 1200억 원으로 직원 한 사람당 400만 원씩 받은 셈. 노동의 양극화, 2007년 여름 비정규직을 만들어낸 대한민국의 초상이다.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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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은혜의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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